칼럼 필사 (5) 걸림돌, 그가 여기 있었다 (손석희 앵커브리핑)


필사 정보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이것 떄문에 발을 헛디디길 바랍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기억해보길 바랍니다.

  • 권터 뎀니히 / 독일 예술가

독일의 예술가 권터 뎀니히는 멀쩡한 보도블록을 깨고 그 자리에 동판을 박아 넣었습니다.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
걸려 넘어지다(stolpern) + 돌(stein)

stolperstein

‘슈톨퍼슈타인’, 즐 걸림돌이라 이름 붙여진 그 동판은 독일은 물론 폴란드/헝가리 등 나치에게 희생된 사람이 살았던 장소에 설치된 추모비입니다.
희생자의 이름과 살해된 날이 새겨져 비극을 증언하고 있지요. 도시 곳곳에 설치된 그 걸림돌은 불편했으나…
사람들은 불편하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심코 발을 디디는 순간,
떠올리게 되는 과거.

파괴되어 사라진 삶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비극을 일상처럼 마주하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복원을 마친 이른바 ‘고종의 길’이 며칠 후면 세상에 공개됩니다. 물론 되살리고 싶은 과거는 아닙니다. 한 나라의 국왕이 깊은 밤 남의 나라 즉,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을 나갔던 치욕의 역사.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총 120m의 그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수치스러움으로 얼룩져 있었을 것입니다.

wianbu

그리고. 정말 되돌아보기조차 싫었던 것일까…
‘최종적이고 불가역’이라던 한/일 간의 합의…

그것이 과거를 잊고자 함도 아니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도 아니라면 그 최종과 불가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곱씹어보기도 전에 그 시절의 대법원은 일본을 향한 피해자들의 소송마저 무력화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권력자들에게 피해자들은 묻어버려야 할 ‘걸림돌’이었을까…
깊은 밤, 숨죽인 임금의 어가가 지나갔을 ‘고종의 길’과…
정부가 돌이킬 수 없이 최종적으로 잊고 싶어 했으며 법원이 가로막고 싶어했던 사람들…
유럽의 거리 곳곳 나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걸림돌 위에는 하나같이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HIER WOHNTE
그가 여기 있었다


[단상]
최근 알쓸신잡 프라이부르크 편을 보면서 7월 경 보도된 ‘위안부’ 관련 앵커브리핑이 연상되어 이번 필사 칼럼으로 선정했다.

프라이부르크 편에서는 김영하를 통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소개된다. 가스실이 설치된 열차를 고안해서 ‘효율적으로 낭비없이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충직한 부하, 아이히만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가 한 말이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나 아렌트는 강조한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그리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보통 악은 큰 동기에서 시작되고, 특정한 사람에게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악 자체는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모래 깊숙히 숨겨놓고 있고 있었던 아끼는 물건이 생각난 기분이랄까. 너무나도 공감되고 이해되는 말인데,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살펴보지도 않고 살았구나.
사실 ‘한나 아렌트’는 알쓸신잡을 통해 팬이 된 ‘김진애’씨의 책을 보고 꼭 접해보고 싶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찾아보니 관련 영화까지 나와있었다.

볼 영화 : 한나 아렌트 GV
볼 책 :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나 역시 ‘우리’라는 이름 아래에서 무관심 속에서.. 생각하지 않고 저지른 ‘평범한 악’이 얼마나 많았던가.
더욱 열심히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사소하게나마라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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