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필사 (4) 그럼에도…유치원 선생님은 천사다. (손석희 앵커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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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손을 잡고 유치원 문을 난생처음으로 들어서는 아이의 몸은 떨렸습니다. 아무나 유치원에 갈 수는 없었던 시절… 도시의 중산층 아이들은 그 유치원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혜택을 받은 것이었고, 유치원 문 안의 세계는 아이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은 적어도 아이들의 눈에는 모두가 천사였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는 유치원 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곳은 아이들에게도 신세계이고, 선생님이 천사인 것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비리 유치원…’
‘유치원’ 앞에 ‘비리’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당최 어울리기나 한 것인가…
그러나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원장선생님은 유치원 돈을 가져다가 콘도미니엄 회원권을 구입했습니다. 명품가방, 고급차량, 심지어 성인용품까지 유치원 예산으로 구입했다가 감사에서 들통이 난 경우도 있었지요.
국가에서 지원받은 것에 더해서 학부모들이 지불한 수업료는 원장선생님이 아파트관리비, 홈쇼핑 비용, 기름값, 입원치료비, 백화점과 노래방, 미용실비, 동창회비 등등…
열거하기도 쉽지 않은 용도로 사용됐습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소수의 비리를 침소봉대하지 말라고 항변했지만 유치원이라는 홍역을 한 번쯤 치른 부모들은 저마다 겪었던 기상천외한 경험담들을 쏟아내고 있으니…
로비를 받아 입을 다물었던 정치권은 그리 할 말이 없을 듯하고,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회계시스템을 개선하고 국공립 유치원을 늘린다는 것…
상식적으로 보면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당연한 조치에 한유총은 ‘너무나 충격적 조치에 경악’한다는…

상식적으로 봐도 엄살로 보이는 반응을 내놓는 2018년의 대한민국.

그럼에도 유치원을 지키고 있는…
여전히 아이들의 천사인 선량한 선생님들과 함께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인 1930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남긴 말을 오랜만에 다시 인용하면서 공유할까 합니다.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누르지 말자.
삼십 년 사십 년 뒤진 옛사람이
삼십 사십 년 앞사람을 잡아끌지 말자.

  • 소파 방정환 (1899~1931) 어린이인권운동가

[단상]
우리 미래의 새싹인 유치원에서 이런 일이…
그 사람이 먹는 것, 시간을 보내는 것, 돈을 쓰는 것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예산 사용 내역을 보았을 때 당최 ‘어린이집 원장님’과 맞지 않은 그릇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악’의 물결 안에서도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과, 믿고 따르며 성장해나가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일이든 사람이든, 지나간 업적/행보에 대해 점검하고 검토해야하는 시스템은 꼭 있어야만 함을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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