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필사 (6) 그것이 민주주의의 윤리… (손석희 앵커브리핑)


필사 정보


“쓰려면 그 열 배를 읽는다. 그게 글쓰기 윤리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비평가 김윤식 선생에게도 글쓰기는 쉬운 작업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5년 전 당시,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쓰기 위해 수없이 읽는다고 했습니다. 특히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작품당 최소한 세 번 이상씩 읽고 나서야 펜을 들었다는 당대를 대표하는 문학비평가.

우리에게는 우리의 필연이
그들에게는 그들의 필연이 있소.
뒷방 늙은이가 관여하고 가르치는 건 염치없는 일.
나는 다만 내 일을 할 뿐이오.

  • 2013년 9월 11일 조선일보 인터뷰

가르치려 들지 않았던 그의 가르침은 낮은 울림이 되어 각인되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열 배를 투자해 하나라도 얻게 된다면 차라리 그것은 요행한 일이라고나 할까.
조바심의 속도와 변화의 속도는 같을 수가 없어서 사람들은 끝내 체념하기도 하지요.

불쑥 내려간 바깥 기온과, 달력으로 기억되는 오늘은 2년 전, 모두의 움직임이 시작된 바로 그날입니다.

우리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세상을 바꿔낸 시민들의 말처럼.
작은 촛불이 가져온 변화는 실로 거대했지만, 촛불 이후 2년, 세상은 얼마만큼 앞으로 나아간 것일까.
스스로 대단했던 우리는 여전히 견고한 격차와 편견과 갈등 앞에서 똑같은 일상에 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쓰려면 그 열 배를 읽는다. 그것이 글쓰기의 윤리다.

책 한 권쯤은 눈 감고도 써 내려갈 것만 같았던 노학자는.
쉬이 얻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더라도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 번 쓰려면 그 열 배를 읽어야 하는 것처럼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그 열 배를 애써야 하기에…

[단상]
어제, 오늘의 내 마음과 꼭 들어맞는 앵커브리핑이다.
작은 일 하나 해내는 것, 사소한 성취도 굉장히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변화 자체에 너무 주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기록한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변화 안에서, 내가 진짜로 배운 것을 확인했을 때, 얼마나 성장했는지 가늠해봤을 때 생각보다 미약해 실망감이 들었다. 변화라는 틀 보다 그 안에서의 내 변화 자체를 엄격하게 되돌아보는 것을 잊지 말고, 그것에 더 집중해야겠다.

하지만 하나 희망적인 것은,
귀한 것은 어느 하나 쉬이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늙은 노학자의 말.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진부한 사실에 힘을 얻는다.

쓰려면 그 열 배를 읽는다. 그것이 글쓰기의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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