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공감의 이야기 (김영하 강연)
3년 전 광명 하안 도서관에서 진행되었던 ‘소통/공감의 이야기’라는 주제의 김영하님 강연 내용이다. 메모장에 묵혀두었던 노트를 꺼내어 블로그로 정리한다.
소설은 왜 읽어야 할까?
소설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소설은 다 읽고 나서도 작가의 의도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 어떠한 교훈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소설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 어떤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까? 톨스토이는 ‘바람 피면 죽는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 이 소설을 쓴 것일까? 롤리타는 어떠한가? 12살 소녀를 사랑한 변태 이야기인가? 마담 보바리, 위대한 개츠비는? 그 어떤 주인공에게서도 교훈을 얻기는 쉽지 않다. 소설 속에서는 유독 현실 세계에서 용납하지 않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다. - 밀란 쿤데라
소설은 교훈이나 행동 지침을 주기보다 독자들이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의 입장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고 공감하게 하기 위해 쓰여진다. 인생 파멸의 순간에 서 있는 아내, 남편, 아이는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게 되는지, 왜 그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하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다.
세상에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실에서는 도덕적 가치, 실수에 대해 냉엄하다. 그래서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 때 타인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기 보다 법으로, 도덕적 잣대로 쉽게 그 일을 판단한다.
세상에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일이 더욱 간단하게 판단되어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건은 0 또는 1로 귀결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복잡한 사정을 가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나쁘지만 다른 면에서는 좋은 사람이 있고, 어떠한 선의도 한 순간에 악의로 변질 될 수 있다. 인간의 이러한 특성은 가족도 낯선 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고, 같은 사건도 세대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판단되어질 수 있다.
소설 / 문학의 역할
좋은 소설은 메시지나 주제를 명확히 들어내기 보다는 그 장면에 따른 주인공의 심리묘사, 감정을 세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소설 속 사건은 도덕적 기준과 법에 따라 처벌되는 간단한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
또한 소설 안에서는 평소 우리가 만나기 힘든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사건들이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다양한 사람의 심리,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삶에 개입해보게 된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내 주변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세상이 정한 기준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존재로서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마련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소설에는 반드시 예기치 못한 사고, 실패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 상황 속에서 그들이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다양하게 접함으로써 우리 인생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실패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소설 ‘노인과 바다’도 결국 어느 늙은 어부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부로서의 자존심과 상어와의 싸움에서는 실패하지만 그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삶의 태도를 보면서 인간 생존의 존귀함을 배울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고통을 겪을 때마다 우리는 배울 수 있고, 이러한 좌절과 실패를 반복해서 간접 경험하면서 미래 trouble에 대한 심리적 보험을 구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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