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소설 A-Z


이해받기

(81p) 지원은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와 대화하다보면 가끔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복숭아를 자르는 것과 비슷하다. 겉은 부드럽지만 어떤 지점에 이르면 더는 날이 들어가질 않는다. 진짜 감정은 딱딱하게 응결된 체 부드러운 과육 아래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86p) 그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 있을 때는 서로를 벌레처럼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가족이란 것들이 어쩌자고 이럴 때는 악머구리처럼 달라붙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왜 그토록 한결같이 역겨운 탐욕들이 들러붙어 있는지. 그들은 그의 마음 한구석에 혹시라도 죄의식이라는 게 남아 있을까봐. 그래서 그의 삶이 버거울까봐 누군가 보내준 선물일지도 몰랐다. 그가 혹시라도 슬픔과 고독을 못 이기고 목이라도 매달까봐 감시해주는 존재들.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인간이란 얼마나 편리한가.

(단상)
“오직 두 사람”을 구입하며 “김영하 소설 A-Z” 책을 받았다. A-Z까지 이르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김영하 소설의 부분들을 발췌한 책이다. 앙증맞은 크기의 책자로 차 안에서 잠깐씩 꺼내 보기도 좋다. 오늘 내 마음을 울린 부분은 Peach keyword 부분이었다. 완전히 공감 받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힘겨운 일이고, 가깝기 때문에 더욱 곤란한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책이란 소설 속 인물에 나의 상황을 투영하여 진정으로 이해 받을 수 있는 응어리 해소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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