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왜 공부하는가

필사

‘경제적 독립’에 대한 생각은 그것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종류의 ‘독립’에 대한 자의식을 키우게 한다. 나의 독립뿐 아니라 우리의 독립, 사회의 독립, 나라의 독립에 대한 것까지 생각이 넓어진다. 스스로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인해서 자아, 자존심, 자긍심, 홀로서기 의욕이 모두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신이 세운 원칙은 힘이 세다.
자아를 이루는 원칙은 삶의 주제가 되고 동기가 된다.
나의 출발점은 ‘독립’이다.

결단하기란 무척 중요하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 결단을 독하게 지키기다. 한번 독해져보면 언제나 독해질 수 있다.

‘인정 효과’역시 양날의 칼이다. 남들의 인정을 미리부터 받으면 더 잘해야겠다는 의욕도 커지지만, 자칫 대접받는 데에 익숙해지는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밑바닥부터 치열하게 자신을 쌓는 철저한 현실 감각과 현장 의식이 부족하게 될 위험도 있는 것이다.

새로 얻은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아는 것도 아는 게 아니며,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비로소 상대와 통할 수 있고, 말로 표현되어야 생각이 정제되고 발전되며, 말하는 행위 자체가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는 분위기였다.

절박한 사람이 절박할 때 우러나는 것이 용기이다. 필요는 용기의 어머니인 것이다. 진정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다.

내가 철학적 멘토로 삼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Amor Mundi’ (세계사랑) 개념이 떠오른다. 아렌트의 ‘세계 사랑’ 개념은 무작정 긍정이나 맹목적 사랑은 아니다. 인간 사회의 현상에 대해서 절망과 좌절을 안고 통렬한 비판의식을 가지면서도 여전히 긍정적 사랑을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이 인간성의 진정한 힘이라는 진실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지식 체계의 틀을 익히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지식의 양은 무한하게 커져도 지식 체계의 틀은 쉽게 흐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제를 포착하는 역량을 익히면 연구할 주제가 자꾸 보이게 되며 호기심과 궁금증 때문에라도 공부를 계속하게 된다. 그래서 박사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은 당장의 논문 성과 자체보다도, 공부하고 연구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 성과를 소통하는 능력을 익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프로젝트마다 공부 주제를 미리 세워놓는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할 때, 나는 배울 것 한 가지를 아예 미리 정해놓는다. 사실 아무리 하기 싫더라도 배울 것 하나 없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이런 효과를 내려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객관화시켜보는 태도가 절대 필요하다. 일에 빠지는 동시에 잠시 전체를 조감해보는 순간을 가져야 한다. 잠깐 거리감을 두고 전체를 조망하고 평가하는 입장이 되어 보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왜 이런 상황이 생기는지에 대한 분석 능력도 늘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도 는다.

교육이라는 말 대신 내가 좋아하는 말은 ‘자라기, 깨닫기, 묻기, 답하기, 해보기’ 같은 것들이다. 부풀려 표현하자면, 나는 ‘소크라테스’적이고, ‘아인슈타인’적이며, ‘다빈치’적이다. 나는 ‘연암 박지원’적이고, ‘퇴계 이황’적이고, ‘고산자 김정호’적이다. 해냈던 일 이상으로 이들의 삶의 방식, 자라기 방식이 좋다. 표현하자면, 이들은 인생을 한바탕 잘 놀다 간 것 아닐까? 나도 그렇게 잘 놀다 가고 싶다.

영화란 한 번의 영화 보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감상과 토론이 곁들여져야 완성된다. 놓친 부분을 찾아내고, 놓쳤던 암시를 다시 찾아내고, 감독의 의도를 찾아내고, 연기자들의 미묘한 표현을 찾아내고, 다른 영화와의 상관관계를 찾아내고, 현실 세계의 사실과 비교하면서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된다. 그래서 어느덧 영화라는 간접체험은 현실의 직접체험과 중첩되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은 잘 ‘통’하는 것이다.
새록새록 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어서,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게 자꾸 더 커져서,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나누고 싶어져서,
날개가 돋고 머리가 부푸는 듯, 자라는 느낌이 좋아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참 많구나, 인간은 위대할 수 있구나 느껴서,
살아 있음이란 참 좋은 것, 참 뜻있는 것임을 느끼게 되어서,

우리는 어떻게 ‘착하고 유능하게’ 일하는 방식을 습득해야 할까?
첫째, 현실 매커니즘을 꿰자! 세상 돌아가는 매커니즘을 알고 대응해야 한다. 먹이사슬의 정체를 알아야 하고, 탐욕스러운 이너서클의 정체를 알아야 하고, 정당하지 못한 꼼수들의 정체도 알아야 하고… 물론 당하지 말고 속지 않는 것이 최고이지만, 언제나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이밍을 포착할 그때는 기필코 온다.
둘째, 경제 감각은 필수다. 어떤 경우에나 돈 감각, 경영 감각, 산업 감각, 거시경제 감각을 갖고 있어야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회의 많은 대안들은 이익을 어떻게 만드느냐, 누구에게 이익이 가느냐, 누가 일할 수 있게 만드느냐, 어떻게 안정을 꾀하느냐에 대한 대안이 포함되어야 설득력을 가지며 그래야 통한다.
셋째, 추진력은 필수다. 추진력이란 실천력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추진한다는 뜻이다. 구상만으로 아이디어만으로 일은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추진력을 가지려면 조직과 돈과 사람과 절차에 대해서 면밀하게 파악하고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추진력 있는 사람은 신뢰를 몰아온다. 그래서 일을 맡기고 싶어진다.
넷째, 친구와 동료를 넓히는 소통력을 기르자. 혼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내가 여전히 공부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때문인 것 같다.
첫째는, ‘야무진 꿈’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 야무진 꿈들은 모두 이루기 힘든 ‘실천’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혼자서는 안 되고 ‘여럿이 같이 해야 이룰 수 있는 꿈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사람은 각기 유일무이의 존재이며 자기와 다른 사람들이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에 관계가 시작되고 소통이 필요해진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건축가’라는 자신 속의 본능을 깨닫고, 말하는 건축가가 되기를 바란다. 진정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떠한 삶을 원하는지, 어떠한 사회를 원하는지, 어떠한 집을 원하는지….이야기 해야 한다. 그리고 들어야 한다. 나와는 다른 의견이 있음을, 그 의견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말하는 건축가’란 자신이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지만을 고민하는 사람은 아니다. 왜 이러한 것을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 수 밖에 없는지, 왜 더 나은 선택이 있는데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 근원적인 문제를 관찰하고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정책에 대해서 단순히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해서 바꾸려고 노력하고, 정책의 더 근원적인 변수인 정치의 속성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 나은 정치적 조건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말하기는 모든 자의식과 모든 관계의 시작이다.
말을 하려고 들면 누구도 공부하게 된다.
말하라, 변한다!

갈등을 안고 행위하는 사람이 좋다.
근사하게 나이 들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개념 그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노동, 작업, 행위’를 하면서 끊임없이 ‘활력적인 삶’을 살아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 비결 아닐까? 박경리 스스로 ‘토지’ 서문에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어떠한 언약을 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방어함으로써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앞으로 보다 험란한 길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라고 쓴 것처럼 절실한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비결 아닐까? 고통과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박경리 선생과 한나 아렌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일했다.

읽을 책

  •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 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드러커)
  • 보이지 않는 차원 (에드워드 T. 홀)
  • 토지, 김약국의 딸, 파시

나에게 질문

  • 야무진 꿈을 말하고 발전시키고 뻗어나가는 방법
  • 갈등에서도 공부로 이겨나가는 방법
  • 근사하게 나이 들고 늙어가는 방법
  • 어떠한 절실한 의문을 가지고 살아나갈 것인가
  • 어떻게 끊임없이 일해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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