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예찬 (part1)

걷기 예찬, 수많은 걷기 책 중 내가 손꼽아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다. 걷기의 육체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 다루고 있고, 걷기를 통해 삶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질문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14p) 걷기는 별것 아닌 작은 일들에 대한 기본적 존재철학의 발전에 알맞은 것이다. 걷는 동안 여행자는 자신에 대하여, 자신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하여, 혹은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하게 되고 뜻하지 않은 수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17p) 이 책에 있어서 글쓰기와 성찰의 중심은 감각적 쾌락과 세상을 향유하는 마음이다. 나는 글쓰기와 걸어온 길들을 통해서 이 세상 속을 자유롭게 출입하고 싶었다.

(20p) 나는 하루에 최소한 네 시간 동안, 대개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일체의 물질적 근심걱정을 완전히 떨쳐버린 채 숲으로 산으로 들로 한가로이 걷지 않으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33p) 사실 걷는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다가 거처를 정한다…걷는 사람은 시간을 제 것으로 장악하므로 시간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 숱한 여러가지 다른 수단들을 다 버리고 바로 이런 이동수단을 택함으로써 그는 달력의 시간과 맞서서 자신의 양보할 수 없는 권능을, 사회적 리듬에 맞서서 자신의 독립성을 앞세운다.

(34-35p) 그러나 때로는 권태 역시 하나의 조용한 관능적 쾌감일 수 있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평소의 광란을 벗어난 잠정적 철수상태일 수 있다. … 걷는 사람은 시간의 부자이다. … ‘발걸음의 문화는 덧없음의 고뇌를 진정시켜준다. 걸어서 하루에 30킬로미터를 갈 때 나는 내 시간을 일 년 단위로 계싼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삼천 킬로미터를 날아갈 때 나는 내 인생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다. … 그야말로 기회와 가능성의 인간이요 흘러가는 시간의 예술, 길을 따라가며 수많은 발견을 축적하는 변화무쌍한 상황의 나그네다.

(49p) 짐은 인간을 말해준다. 짐은 물질적인 형상으로 나타난 인간의 분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공정한 관찰자는 짐을 보고 그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당장에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그래서 로돌프 퇴퍼는 그의 아름다운 저서 지그자그 여행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꼬집어 말해준다. ‘여행을 할 떄는 배낭 이외에 활기, 쾌활함, 용기, 그리고 즐거운 마음을 충분히 비축해 가지고 떠나는 것이 매우 좋다.’

(51p) 소로는 처음부터 생각이 뚜렷하다. 그는 이렇게 쓴다. ‘확신하거니와, 내가 만약 산책의 동반자를 찾는다면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어떤 내밀함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53p)폴 테루 역시 자신의 고독을 간직하는 쪽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나는 혼자일 때만 생각이 맑아지는 것이었다.

(66p)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의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

(69p) 마치 대자연에도 어떤 성격이 있고 지능이 있다는 듯 소리 하나하나가 깊은 명상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 같다.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 소리에 전율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 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들을 통해서 내 힘과 정신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소리들이 침묵의 한가운데로 흐르지만 그 침묵의 배열과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그 소리들이 침묵의 존재를 드러내주고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어떤 장소의 청각적 질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어준다.

침묵은 감각의 한 양식이며 개인을 사로잡는 어떤 감정이다.

(76p) 어떤 풍경의 아름다움과 관련된 침묵은 자아에로 인도하는 길이다. 문득 시간이 정지하는 그 순간에 하나의 통로가 열리면서 인간에게 자신의 자리를 되찾고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다. 그 기회에 우리는 세상의 소란과 일상의 근심걱정으로 되돌아가기에 앞서 감각과 내적 힘을 축적한다.


[단상 1]
어깨가 항상 무거운 나는 걸을 때 짐을 최소한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우선 순위로 가방에 넣는 물건은 블르투스 키보드와 아이패드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기록하고 이북을 읽을 수 있도록 하려는 마음에서이다. 습관처럼 넣어두었던 것인데 내 마음이 물질적인 형상으로 표현된 것이라니 더욱 애틋해진다. 자주 꺼내어 쓰고 닦아야겠다. 침묵 편은 가장 공감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가장 다르게 걷는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침묵하며 걷지 않는다. 오디오북을 듣거나, 음악을 듣거나, 함께 걷는 이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침묵하며 진정으로 자연의 숨어있는 결들을 느끼기 전에 조급한 마음과 지루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로가 말하는 것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내밀함이란 어떠한 것일까. 되돌아보면 인생을 살면서 평범하게 지나던 몇몇 장소가 뜻밖에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 때가 잠깐이나마, 듣던 음악과 생각과 맞물려서 자연과 교감했던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단상 2]
감각적 쾌락과 세상을 향유하기 위한 글쓰기와 걷기. 헨리데이비드 소로의 최소 4시간 걷기. 시간 부자. 덧없음의 고뇌 … 책을 읽으며 이런 단어들이 나의 관념을 환기시켜주었다. 이런저런 상황, 혹은 핑계로 걷기 소홀한지 몇 달 째, 걷기를 시작한 1년 전 초심을 잃은지 오래다. 걷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모자르고, 정신은 지친다. 책을 읽다보니 걷지 않았기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나의 상황이라면 점심시간 정도에 짬을 내서 걸을 수는 있겠지만, 걸으면서 과연 상념과 근심과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우선 걸어봐야겠다. 정신적 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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