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지인이 필사한 부분을 공유해줘서 알게된 ‘이나가키 에미코’의 ‘퇴사하겠습니다’ 중 일부분이다. 요새 내가 적극적으로 느끼고 있는 부분과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옮겨보았다.

그 후 휴일이 되면 빠짐없이 각지 직거래 장터를 순례하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잎채소 종류가 많은 곳, 쌀 종류가 많은 곳. 산에 있는 직거래 장터에서는 가을이 됐다 하면 이제껏 본적 없는 버섯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게다가 양손 가득 사봐야 다 해서 1000엔도 안 돼요! 명품 옷을 사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즐거움을 담뿍 안겨 주는데 이 가격이라니! 혹시…… 돈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건 이런 걸까?
하지만 직거래 장터의 매력은 ‘싸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나는 직거래 장터에 ‘없는 것’이 많다는 점에 끌렸습니다.

마트에는 어느 계절이든 채소들은 대체로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직거래 장터에서 채소를 사면서는, 채소라는 것은 본디 그것들의 계절이 오지 않으면 수확할 수 없다는 점을 좋든 싫든 알게 됩니다.
무를 예로 들어보지요. 자랑일 리 없지만, 무 철이 언제인지 난 전혀 몰랐습니다. 언제든 어묵이니 조림이니 무즙이니,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직거래 장터에서는 무는 찬바람이 불지 않으면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무가 없네, 아직도 안 나왔네, 아, 언제 나오나, 무 하고 목을 빼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제철이 되어 만나는 기쁨, 돌연 직거래 장터 선반 여기저기가 큼직한 무로 꼭 들어차게 됩니다. 이제야, 드디어……왔구나, 왔어! 그렇게 들뜨는 순간입니다. 그러면 우리 집 식탁에는 실컷 무 요리가 나옵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사라지고 말 테니 필사적으로 먹습니다. 배추도 그렇죠. 대파도 그렇습니다. 물론 여름이 와야 등장하는 채소도 많지요. 토마토, 가지, 피망, 채소는 인간들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기의 속도에 맞춰 세상에 나옵니다.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음, 불편해, 곤란한데…… 그렇게 느끼시겠지요?
근데요, 제철에만 겨우 만나는 무, 이게 놀랍게도 나한테는 엄청난 호사로 느껴진 겁니다. 언제든 마트에서 살 수 있을 땐, 기쁘다고도 다행이라고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 조금씩 쌀쌀해지고 더욱 더 추워지면, 이제 슬슬 무가 나올 계절이구나, 후후 불면서 무조림을 먹고 싶어라, 아직 안 나오나, 아직도 안 나오나, 무님! 와아, 무느님 나오셨다! 그런 기쁨은 정말 가슴 뛰는 구석이 있습니다. 이 재미를 알면 더 이상 마트에는 못갑니다, 못 가요. 물론 다카마쓰에서도 마트에선 언제든 무를 살 수 있지요. 하지만 제철에 사는 즐거움을 맛보고 나면, 마트의 편리함이 허전하게 느껴집니다.

언제든 채워진다는 것은, 물건이 없던 시절에는 엄청난 호사였을 겁니다. 하지만 언제든 무엇이든 다 있는 지금, ‘있다’는 것을 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오히려 ‘없다’는 게 훨씬 사치스럽습니다. 훨씬 더 호사입니다. 그러니까 직거래 장터는 내게 돈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어주었을 뿐 아니라, ‘없다’는 것이 ‘있다’는 것보다 훨씬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그때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는 곳이 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얻기 쉬운게 많아진 세상이다.
SNS 한 문장으로 쉽게 소통하고, 클릭 몇 번이면 필요한 물건이 문 앞에 놓여 있다. 인터넷엔 풍부한 자료가 넘쳐난다.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착각에도 불구하고, 헛헛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부족함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희소성, 소중한 가치, 간절함 등의 결핍때문일 것이다.

되돌아보면, 인생을 통해 변함없이 추구하게 되는 것들은 쉽게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갈망해온 일이기 때문이었다. 없음을 통해 오히려 ‘영글어진 모습’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불편하고 부족한 것들을 ‘호사’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다시금 일깨워 준 이 글귀가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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